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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ntier Mutualism

‘불확실성’과 ‘상대성’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가 되었습니다.
사실 이런 단어들은 현대 물리학의 등장을 이끌었습니다. 세상에 대한 이해에 인과율과 자기문화 중심의 절대적 가치만을 적용하던 것이 고전적 사고였다면, 사건이나 현상에 대하여 그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지 않은 확률과 상대성을 적용하는 소위 현대적 사고체계가 형성된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포스트모던적(탈근대적) 생활양식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이러한 크고 급격한 변화 가운데 기존의 질서도 요동을 쳤습니다. 냉전 시대가 종식되고 다양화, 다극화, 파편화, 지역화와 국제화 나아가 글로벌화 등으로 대변되는 격동의 시대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포스트모던적 사고체계 가운데 옛 질서나 구조에 대한 해체와 재구축으로 소위 뉴노멀(New Normal)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여 여기 저기에서 사용되지만, 불확실성은 증대되어 가는 듯합니다.

여기에 더하여, 걷잡을 수 없이 증대하는 인류문명의 환경 쓰레기들과 대기중 이산화탄소 증가 등으로 기인하였다 여겨지는 급격한 기후변화와 자연재해 그리고 이와 맞물린 첨단과학산업의 재앙적 균열은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의 등장과 더불어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인류는 문명을 발전시키면서도 공동의 가치를 담아내는 문화를 형성하여 나름대로 안정감을 갖고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오랫동안 연습한 것 같지만, 실상은 문명이 충돌하고 교차하는 문화적 상황에 대처/적응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인간성 자체가 도전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모두 공감합니다. 인간 사이에서 더불어 살아가야 할 뿐만 아니라 자연과 공존해야 합니다. 이는 개인 간의 주제일 뿐만 아니라 사회 공동체의 주제입니다. 다양한 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일련의 사람들이 함께 나누고 연구해야 할 주제인 것입니다.

(사)글로벌상호문화연구소(GCRI)는 전 우주적이고 본질적인 인간 존엄성에 기초한 인류애의 실천과 평화공존의 모색에 대한 부담을 가진 사람들이 자리를 함께 하여 이론적이며 실천적인 집단지성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서로 다른 종교-사회-문화적 전통에 대한 배타주의(exclusivism), 포괄주의(inclusivism), 그리고 다원주의(pluralism)적인 관점을 뛰어 넘는 상호주의(mutualism)을 실천하는 장을 열어가고자 합니다. 영어의 “Mutualism”은 경제나 무역에서는 호혜주의로, 생물학에서는 공생관계로, 인문사회학이나 계약을 다룰 때에는 상호주의로 번역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 연구소의 명칭에는 상호문화를 영어의 “Cross-culture”를 사용함으로써 타문화들이 조우하는 상황을 강조하고, 앞에 “Global”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전지구적 상황을 다루고자 하는 의도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상호문화(Cross-culture)를 다룸에 있어서 적용되는 원리는 상호주의(Mutualism)가 될 것입니다.

이 상호주의에 대한 연구는 다양한 분야에서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이에 대한 여러 자료들은 회원들께서 직접 열람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연구 프로젝트 페이지나 매가진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될 것입니다. 또한 본 연구소의 설립 취지는 다른 독립된 페이지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인류 공영과 상생이라는 원대한 비전에도 불구하고, 상호주의에 대한 기초연구와 그에 입각한 작은 실천으로 본 연구소는 첫 걸음마를 떼려고 합니다.

2024년도 하반기에는 상호주의에 대하여 종교-문화-전통을 뛰어넘는 연구자들이 함께 토론하며 이해와 실천의 폭을 넓혀 가고자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국제 컨퍼런스를 하게 됩니다. 또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이슈는 결코 강 건너 불 구경하듯 바라만 보고 있기에는 우리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에서도 연구해야 할 내용이 넘쳐납니다. 이에 대한 접근으로 펠레스타인 현지 상황 가운데 있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되, 상호주의적 관점에서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를 하고자 합니다. 

​
앞으로 설립취지에 합당한 다양한 목적사업들을 통하여 더욱 인류 공생과 상생의 방안을 상호주의적 관점으로 수행해 가고자 할 때에 여러분들의 관심과 협력과 지원을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상호주의(Mutualism)에 대하여

​상호주의로 번역된 영어의 “Mutualism”은 생물학에서 공생이라는 단어로 쓰인다. 생물학 용어 공생은 서로가 다른 종임에도 상생적 공존 즉 서로가 혜택을 주고 받는 관계적 생존을 의미한다.

공존(Co-existence)에도 몇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서로가 대치하는 적대 관계나 견제 가운데에서 공존하는 것이 있을 수 있고, 서로를 인정하지만 상생적이라기 보다는 서로의 간섭이나 관심을 배제하는 공존이 있을 수 있다. 전자는 아마도 양극체제였던 냉전시대의 존재 양상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고, 후자는 종종 평화적 공존이라고 이름하는 것에 대한 현상론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평화적 공존이든 적대적 공존이든 공존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자생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식민지 이후 국제 질서에 등장한 독립국가들에게 가장 필요로 했던 것은 아마도 자생력이었을 것이다. 어느 정도의 자생력이 만들어진 이후에 국제 관계에 경쟁력을 갖추기 위하여 어떤 형태의 공존을 추구해야 하는지 방향성을 잡아야 했을 것이다. 실제 양육강식이 판을 치던 국제질서 가운데에서 살아남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합종연횡의 전략을 추구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이러한 생존을 위한 전략은 식민지 시대 이후에 등장하는 새로운 국가들이 국제질서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 뿐만 아니라, 소외되었던 인간이 자연 가운데에서 어떻게 생존을 이어가야 했는지에 대한 어렵지 않은 고찰을 통해서도 이해가 된다.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은 그것이 적자생존이든 평화공존이든 자연 가운데에서 먼저 스스로 생존해야 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했을 것이다. 인간이 가장 먼저 선택한 방법은 위험이나 위협으로부터 피난하고 숨는 것이었다. 짐승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치고 빠지는 수렵과 동굴속의 생활을 상당한 기간 해야 했을 것이다. 어느정도 자연을 이해하는 지식과 정보가 축적되고 그에 따른 기술이 개발된 이후에 등장한 생존전략은 집단 거주와 정착 그리고 자연을 이용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자연과의 조화 보다는 개척과 점령과 개발을 통한 생존전략이 끊임없이 지속되었고, 결국 지구라는 한정된 땅 덩어리 가운데에서 서로가 충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주어지고 인간 집단과 인간 집단이 서로를 적대시하며 경쟁하고 싸워왔고, 나라와 나라가 마찬가지로 경쟁 가운데에서 투쟁해왔다. 결국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이라고 하는 엄청난 대가를 치른 인류는 경쟁과 싸움보다는 공존을 모색하게 되고 다양한 모습의 공존을 실천하면서도 끊임없는 경쟁과 갈등을 내재한 채 글로벌 시대를 맞이하였다. 이러한 인간 스스로의 공존을 위한 다양한 상황의 변화 가운데에서 인간의 삶을 둘러싸고 있고 인간의 삶 자체가 포함되어 있는 자연 가운데에서의 생존과 공존의 문제가 새롭게 등장하였다.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자체가 새롭게 정립되어야 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인간 사이에서의 공존과 상생, 즉 공생의 문제 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공존과 상생, 즉 공생의 문제가 첨단의 과제로 주어진 시대를 맞이하였다.

작금의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엄청난 소용돌이 가운데에 놓여 있다. 계파간 정당간 지역간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24년 12월 3일 있었던 비상계엄선포 이후 정국은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안정하고 불투명하다. 정치적 소용돌이 가운데 뒷전으로 물러난 문제인 것 같지만, 우리 나라의 출생률은 2023년도 기준 0.72명으로서 OECD국가들 중 가장 낮은 위치인 인구절벽 상태에서도 인구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외국에서 유입되는 이주정착민들의 숫자가 그만큼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우리나라는 이제 여야 당파나 지역적 감정을 가지고 대립적 공존이나 일방적 생존을 추구하는 시대적 착오를 빨리 벗어날 필요가 있다. 외국에서 유입되어 어느새 우리 와 함께 공동체를 구성하게 된 수많은 이주정착민들이 오히려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 가운데 사회적 관심에서 소외된 또 다른 게토집단이 되어갈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상생적 공존을 추구해야 한다. 상생적 공존이란 바로 공생적 관계를 의미한다. 공존하기 때문에 상생이 이루어지고 상생을 위해서 공존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때에 다시 생각나는 인간 삶의 기본 원리가 있다. 그것은 바로 “경천애인(敬天愛人)”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하늘을 공경하는 마음이 새겨져 있다는 것은 우리 인간의 인간됨은 그 본성이 하늘로부터 주어졌음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렇기에 모든 인간이 동등하게 존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어떤 당파나 사람에게 분명한 잘못이 있음에도 그 잘못에는 그 잘 못을 낳게 하였던 다른 당파나 사람에게도 잘못이 있음을 의미한다고 하는 양비론적 입장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잘잘못을 규정짓기 이전에 사람됨에 대한 가치와 서로에 대한 기본적 배려 그리고 상호간의 존중심을 가져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남에 대한 판단을 먼저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아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내가 먼저 다른 이의 유익이 되고 있는가에 대한 자기 성찰과 겸손의 자세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상호주의(Mutualism)는 “경천(敬天)”에서 출발하여 “애인(愛人)”으로 실천되어야 함에 대한 일종의 함의이다. 사실 “경천애인(敬天愛人)”은 많은 곳에서 발견되는 사상이며 함의이기도 하다. 이는 그만큼 보편성을 띈다는 의미일 수 있다. 동양을 보면, 보통은 유교사상의 근간인 공자의 시경과 논어에 그 내용이 함축되어 있다고 하고, 우리 나라의 경우 증산도나 대종교의 천부경 핵심 주제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유교의 경우 보통 실천에 방점을 둔 반면, 천부경과 같은 경우 쉽게 드러나 보이지 않은 내밀한 뜻과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이 많았다. 서양의 경우 역시 “경천애인”의 적용을 성경에서 찾았다. 

마가복음 12장과 마태복음 22장에는 예수께서 바래새인과 사두개인 그리고 서기관들 앞에서 사람으로서의 본분 즉 삶에서 명심하고 지켜야 할 기본에 대하여 명확하게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예수의 대답은 명쾌하다. “경천애인(敬天愛人)”이다.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막 12:29-31)

그것이 명쾌한 것은 질문을 하였던 소위 이스라엘의 엘리트 집단이 알고 있는 것을 다만 상기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왜냐면 유대인들은 쉐마라고 하는 신명기 6:4-5,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라는 말씀을 모두가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 말씀에 대한 중요성은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 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그 말씀을 강론하고 그것을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집문설주와 바깥 문에까지 기록할 것을 명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신 6:7-9)

이와 함께 레위기 19:18에 ‘애인(愛人)’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가 주어졌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이상 레위기와 신명기는 모세의 법 즉, 토라에 속하여 유대인들은 모두가 너무나 잘 아는 내용이었고, 예수는 이를 소위 이스라엘의 엘리트들에게 자명하게 답변한 것이었다. 

사실, 예수의 생애 전체는 이를 실천하는 것이었다. 이는 철학적 인식론이 아니었다. 합리적 이성에 의하여 도출된 실천강령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천부적으로 주어진 참인간됨의 의미가 삶 가운데 가시화된 것이었다. 이는 인간의 본래적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델로서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는 솔로몬이 인생의 허무함을 논하면서 인간의 본분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라고(전 12:13) 정리한 것과 동일하다. 

상호주의(Mutualism)를 인간의 삶에 적용하면, 그것은 서로를 인정하는 것 이상으로 존 중하며 그 존중하는 이상으로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상호주의의 대표적 예인 꽃과 나비는 서로가 다른 종이지만, 서로를 필요로 하고 서로의 공존이 상생을 낳는다. 이들은 천부적 창조 질서에 순응하며 서로의 자연스러운 상생적 공존을 조화롭게 이루어가는 생명체이다. 

이제는 우리가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상호주의를 실천함으로 우리의 본분을 찾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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