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주의와 이타심에 대한 단상
(A Piece of Thought on Mutualism and Altruism)
저희 단체는 상호주의(Mutualism)에 기초하여 상호문화적 글로벌 사회공동체(Cross-cultural Global Communities) 가운데에서 상생과 공존을 위한 창의적 방안들을 강구해 나가고 있습니다. (상호주의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위하여 여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상호주의의 온전한 실천을 위해서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 인간 삶의 미래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먼저 우리가 어떠한 시대적 변화 가운데에 있는지 간단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식민주의 시대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계몽주의와 합리주의 그리고 실증주의의 끝판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이념 대립으로 형성되었던 냉전 시대라 여겨집니다. 소위 AI(인공지능) 기반의 휴머노이드가 일상에 도래한 현시대라지만, 우리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해보면, 많은 사람이 역사의 뒤안길에 남겨 두어야 할 구시대적 정신에 기반하여 살고 있는 듯 보입니다.
AI가 언급되었기에 한마디 하자면, 딥러닝에 기반한 생성형 AI의 경우 결국은 인간에 대한 어떤 이해와 기준을 형성하게 될 것인지가 인류 미래를 결정짓는 이슈가 될 것입니다. 2024년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 명예교수는 『"우리보다 더 지능적인 디지털 존재를 만들 때 발생할 수 있는 장기적인 실존적 위협이 있다"며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슈퍼인텔리전스'(초지능·super-intelligence)의 등장을 우려했다.』고 합니다.[1] 그는 이어서 『"우리가 이를 통제할 수 있을지 여부는 알 수 없다"며 "하지만 단기적 이익에 동기 부여된 기업이 이런 기술을 만든다면 우리의 안전이 최우선 순위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증거가 있다"고 지적했다.』고 합니다.[2]
과학이 발달하고 지식이 증가함에 따라서 미래의 인류 생존 자체가 점점 더 위협을 받는 실정입니다. 정보의 양이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많아지고[3] 그 유통이 빛의 속도로 이루어지면서, 인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더욱 커가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이는 엔트로피 즉, 무질서도의 증가라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질서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 자체가 사실 엔트로피를 증가시키긴 하지만, 우리 인간이 극단적 무질서인 카오스와 그 가운데에도 생성되는 질서를 인식하는 자체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나름 가져봅니다.
그렇다면, 극심한 무질서 가운데에 실천되고 실현되어야 할 궁극적 삶의 기초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그 답은 아마도 지금까지 우리 인간의 존속을 지탱해주고 있는 우주에 내재된 어떤 원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것을 본인은 이타심(Altruism)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있기 위해서는 먼저 내 주변의 타자가 함께 해야만 가능하다는 생각입니다. 이타심은 타자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지만, 그것은 사실 나를 위한 궁극적 생존 전략일수도 있습니다.
2025년을 시작하면서 “인간과 고래”라는 잘 알려진 과학 다큐를 TV에서 시청하였습니다. 여기서 주인공 고래는 혹등고래였는데, 수염고래과로서 길이가 무려 12~16미터, 무게가 36톤까지도 나가는 거대한 해양 포유동물입니다. 우리가 상호주의(Mutualism)를 이야기할 때에는 개미와 진딧물 혹은 개미와 버섯과 같은 서로에게 유익이 되는 관계 즉, 호혜관계성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타심 혹은 이타주의는 그것이 반드시 자기에게 유익이 없어 보이지만, 타자의 유익을 위한 행동의 발로라는 점에서 상호주의와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혹돔고래는 자기와 다른 종류의 고래나 바다사자 심지어 사람까지도 예를 들어 상어의 위협적인 공격에 당하지 않도록 막아주거나 보호하는 행동을 한다고 합니다. 진화론을 다루는 생물계에서 작동하는 원리는 적자생존이지만, 이와 같이 상호주의적 혹은 공생적 관계 및 이타적 행동양식이 존재한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상호주의의 온전한 실천을 위해서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 인간 삶의 미래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먼저 우리가 어떠한 시대적 변화 가운데에 있는지 간단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식민주의 시대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계몽주의와 합리주의 그리고 실증주의의 끝판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이념 대립으로 형성되었던 냉전 시대라 여겨집니다. 소위 AI(인공지능) 기반의 휴머노이드가 일상에 도래한 현시대라지만, 우리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해보면, 많은 사람이 역사의 뒤안길에 남겨 두어야 할 구시대적 정신에 기반하여 살고 있는 듯 보입니다.
AI가 언급되었기에 한마디 하자면, 딥러닝에 기반한 생성형 AI의 경우 결국은 인간에 대한 어떤 이해와 기준을 형성하게 될 것인지가 인류 미래를 결정짓는 이슈가 될 것입니다. 2024년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 명예교수는 『"우리보다 더 지능적인 디지털 존재를 만들 때 발생할 수 있는 장기적인 실존적 위협이 있다"며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슈퍼인텔리전스'(초지능·super-intelligence)의 등장을 우려했다.』고 합니다.[1] 그는 이어서 『"우리가 이를 통제할 수 있을지 여부는 알 수 없다"며 "하지만 단기적 이익에 동기 부여된 기업이 이런 기술을 만든다면 우리의 안전이 최우선 순위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증거가 있다"고 지적했다.』고 합니다.[2]
과학이 발달하고 지식이 증가함에 따라서 미래의 인류 생존 자체가 점점 더 위협을 받는 실정입니다. 정보의 양이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많아지고[3] 그 유통이 빛의 속도로 이루어지면서, 인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더욱 커가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이는 엔트로피 즉, 무질서도의 증가라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질서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 자체가 사실 엔트로피를 증가시키긴 하지만, 우리 인간이 극단적 무질서인 카오스와 그 가운데에도 생성되는 질서를 인식하는 자체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나름 가져봅니다.
그렇다면, 극심한 무질서 가운데에 실천되고 실현되어야 할 궁극적 삶의 기초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그 답은 아마도 지금까지 우리 인간의 존속을 지탱해주고 있는 우주에 내재된 어떤 원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것을 본인은 이타심(Altruism)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있기 위해서는 먼저 내 주변의 타자가 함께 해야만 가능하다는 생각입니다. 이타심은 타자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지만, 그것은 사실 나를 위한 궁극적 생존 전략일수도 있습니다.
2025년을 시작하면서 “인간과 고래”라는 잘 알려진 과학 다큐를 TV에서 시청하였습니다. 여기서 주인공 고래는 혹등고래였는데, 수염고래과로서 길이가 무려 12~16미터, 무게가 36톤까지도 나가는 거대한 해양 포유동물입니다. 우리가 상호주의(Mutualism)를 이야기할 때에는 개미와 진딧물 혹은 개미와 버섯과 같은 서로에게 유익이 되는 관계 즉, 호혜관계성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타심 혹은 이타주의는 그것이 반드시 자기에게 유익이 없어 보이지만, 타자의 유익을 위한 행동의 발로라는 점에서 상호주의와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혹돔고래는 자기와 다른 종류의 고래나 바다사자 심지어 사람까지도 예를 들어 상어의 위협적인 공격에 당하지 않도록 막아주거나 보호하는 행동을 한다고 합니다. 진화론을 다루는 생물계에서 작동하는 원리는 적자생존이지만, 이와 같이 상호주의적 혹은 공생적 관계 및 이타적 행동양식이 존재한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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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꾼 개미와 균류(버섯)의 공생
https://www.nie.re.kr/nie/bbs/BMSR00029/view.do?boardId=9770984&menuNo=200098 (서천 국립생태원 제공) |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읽혔다는 성서의 예수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하는 황금률을 전해 주었습니다. 나아가 “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라고 말합니다. 사실상 평범한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실천강령처럼 들립니다.
이제 도래하는 휴머노이드 AI시대에 이타심을 기초로 하는 생성형 AI를 개발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그 이전에 휴머노이드 AI와 인간 사이에 이루어져야 할 상호주의적 공존을 고민해야 할 시기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우리 인간 사이에서 상호주의와 이타적 삶의 양식을 훈련하고 실천해야 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을 수 있다는 생각이 기우였으면 좋겠습니다.
AI가 따라 올 수 없는 참 인간성을 공감(Empathy) 능력에서 찾기도 합니다. 우리나라가 참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지만, K-문화의 우수성에 세계 많은 나라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인 집단의사의 표현 방식으로 자리 잡은 광장민주주의라고 합니다. 그 면면이 일제 치하의 삼일운동부터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다양한 이유에 의하여 우리나라에 이주해 온 다양한 종교-사회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주민들이 함께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본토박이 한국인들뿐만 아니라 이주하여 정착한 국내의 외국인들까지도 한국 내의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작금의 상황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인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선을 행하면서도 지치지 않고 인내하여 결국 서로에게 유익한 것들을 창작해내는 본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경천애인(天愛人)의 한국인 본성과 연결된다고 여겨집니다. 이에 대하여는 다음 편 기고를 통하여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연합뉴스 – https://www.yna.co.kr/view/AKR20241211068100009 (2024-12-11)
[2] 상동
[3] 그래서 더욱 손안에 들려 있는 디지털 기계나 AI에 의존하게 됩니다. 앞으로는 상온초전도체가 상용화되고 양자콤퓨터가 일상화되면 인류는 지금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삶의 환경 가운데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이제 조만간 개인 컴퓨터(PC)가 인류의 역사에 처음 등장하여 Apple - XT/AT/386 ... 시대로 이어졌던 바이너리 디지털 컴퓨터 시대는 구시대로 물러갈 것입니다.
이제 도래하는 휴머노이드 AI시대에 이타심을 기초로 하는 생성형 AI를 개발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그 이전에 휴머노이드 AI와 인간 사이에 이루어져야 할 상호주의적 공존을 고민해야 할 시기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우리 인간 사이에서 상호주의와 이타적 삶의 양식을 훈련하고 실천해야 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을 수 있다는 생각이 기우였으면 좋겠습니다.
AI가 따라 올 수 없는 참 인간성을 공감(Empathy) 능력에서 찾기도 합니다. 우리나라가 참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지만, K-문화의 우수성에 세계 많은 나라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인 집단의사의 표현 방식으로 자리 잡은 광장민주주의라고 합니다. 그 면면이 일제 치하의 삼일운동부터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다양한 이유에 의하여 우리나라에 이주해 온 다양한 종교-사회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주민들이 함께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본토박이 한국인들뿐만 아니라 이주하여 정착한 국내의 외국인들까지도 한국 내의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작금의 상황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인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선을 행하면서도 지치지 않고 인내하여 결국 서로에게 유익한 것들을 창작해내는 본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경천애인(天愛人)의 한국인 본성과 연결된다고 여겨집니다. 이에 대하여는 다음 편 기고를 통하여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연합뉴스 – https://www.yna.co.kr/view/AKR20241211068100009 (2024-12-11)
[2] 상동
[3] 그래서 더욱 손안에 들려 있는 디지털 기계나 AI에 의존하게 됩니다. 앞으로는 상온초전도체가 상용화되고 양자콤퓨터가 일상화되면 인류는 지금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삶의 환경 가운데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이제 조만간 개인 컴퓨터(PC)가 인류의 역사에 처음 등장하여 Apple - XT/AT/386 ... 시대로 이어졌던 바이너리 디지털 컴퓨터 시대는 구시대로 물러갈 것입니다.